2018.12.03 11:55

느리지만 완벽하게, 천천히 내가 원하는 공간으로
#아파트     #30평대     #네츄럴     #4인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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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초등학생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자 고등학교 미술 교사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 말고도 나무로 만든 가구, 예쁜 그릇들을 좋아해요. 제가 쓰고 있는 가구나 그릇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내년 출판예정을 목표로 살림살이에 관한 책을 쓰고 있어요.

 

‘자 이제부터 집을 완벽히 꾸밀거야. 집 수리와 가구, 가전의 견적을 뽑아보자.’ 라는 절차는 없었어요. 한번에 집을 완벽하게 꾸미기보다는 돈이 생기는 만큼 조금씩, 몇 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었어요. 집이라는 게 누구에게 보여줄 쇼룸을 오픈하는 것이 아니니까, 한 번에 모든 것을 세팅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8년의 세월을 거치며 서서히 완성되어 가고 있는 저희 집입니다.

 

 

네 가족이 도란도란 살아갈 집

 

둘째가 태어나고 네 식구가 살 집을 보러 나왔다가 첫번째로 본 아파트예요. 베란다에서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더라고요. 여기라면 하늘과 나무들을 보며 사계절을 느낄 수 있고 공원을 앞마당처럼 쓸 수 있겠구나 싶어 이사를 결정했어요.

 

 

따스하고 편안한 나뭇결이 느껴지는 거실

 

식구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이 노는 거실입니다. TV가 없기 때문에 TV+소파 공식의 배치와는 다른 모습으로 꾸밀 수 있었어요. 창문 쪽으로 소파를 두고, 소파 앞에는 아이들이 숙제를 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서랍이 달린 테이블을 제작하여 놓았어요.

 

소파는 패브릭소재라 커버를 교체하며 분위기를 바꿔주고 있어요. 집안의 가구들은 대부분 맞춤제작을 한 것들이에요. 살다가 이사를 가게 되면 돈을 들여 바꾼 문짝이나 붙박이장 같은 건 떼어가지 못하잖아요. 집에 쓰는 돈은 기본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느리더라도 평생 쓸 만한 좋은 가구들로 장만하자고 이야기했죠.

 

소파 옆에 있는 낮은 수납장은 수납공간이 넉넉하도록 제작했어요. 양쪽 문을 열면 책은 물론이고 스케치북과 노트북을 수납할 수 있도록 칸을 구분했어요.

 

소반은 제가 아끼는 가구 중 하나예요. 아이들이 바닥에서 놀 때 간식을 먹기도 편리하고 가볍고 작아서 어디든 끌고 다니기 좋아요. 침대 위에 놓고 노트북 책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요, 아이의 친구들이 놀러올 때에도 간식상으로 요긴하게 쓸 수 있답니다.

 

수납장의 맞은편에도 맞춤제작한 책장이 놓여 있어요. 지금은 어린이책들이 잔뜩 꽂혀 있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책을 모두 비우고 제가 좋아하는 그릇이나 기물을 놓으려고 비례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두고 제작했어요.

 

 

경험자가 알려주는 맞춤제작 가구 TIP.

 

가구를 살 때는 10년, 20년 뒤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는 편이에요. 지금은 책꽂이지만 10년 뒤에는 장식장이 될 수도 있고, 높은 테이블의 다리를 잘라 낮은 테이블로 사용할 수도 있으니깐요. 그래서 저는 기성품 가구보다는 원하는 용도와 기능을 갖춰 맞추는 가구를 좋아합니다.

 

가구를 맞출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아래 세 가지예요.

 

 

(요즘엔 국내에도 좋은 가구 공방이 참 많아요. 개인적으로는 비플러스엠의 디자인과 철학이 좋아 이곳에서 대부분의 가구를 맞추고 있어요.)

 

 

한 박자 쉬어 가는 곳, 주방

 

거실과 이어져 있는 주방에도 제가 좋아하는 맞춤제작 수납장들이 놓여 있어요. 창밖의 풍경을 가리지 않는 폭이 좁은 그릇장과 여럿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는 테이블이 전부인 공간이에요.

 

식탁 앞에 있는 낮은 그릇장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구 중 하나예요. 냄비, 밥솥, 소가전의 크기와 높이를 하나하나 재서 선반 사이즈를 맞추었어요. 절반은 문을 달아놓고 절반은 오픈해두었어요. 지저분한 것은 숨기고 보이고 싶은 것은 오픈해서 늘 단정해보여요.

 

그릇장 위에는 저의 그림과 물건들을 올리고 계절의 분위기를 더해요. 제철 과일을 소복이 담거나, 아파트 화단에서 가지치기하는 날 나뭇가지들을 받아와 물에 꽂아요. 계절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저희집의 시그니쳐 공간이에요.

 

(황선회, 김남희, 연호경 작가, 해인요, 청송백자, 보니데, 스튜디오오얏 등)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가 그릇들을 많이 좋아해요.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 온 도예 작가님과 목선반 작가님들께 구입한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사람이 정성들여 만든 물건을 구입하고 길들이며 사용하는 것이 즐거워요. 그릇과 가구를 만들어 주시는 분들과 교류하며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주말 오후면 좋아하는 작가님의 잔을 골라 친구가 로스팅해준 커피를 내리고 부엌의 풍경을 바라봐요. 좋아하는 것들에 햇빛이 닿는 순간이 참 예뻐서 그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어요.

 

그런 사진들을 보시고 제가 항상 그렇게 사는 줄 아시는 분들이 가끔 계셔요. 하지만 평소에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 지 입으로 들어가는 지 모르는 부산스러운 부엌에서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사진은 한 주간 쉼표의 기록일 뿐입니다. (웃음)

 

 

아이들의 미래까지 생각한 가구, 아이방

 

(5년 전 꾸며준 아이들의 방)

 

처음에는 2층침대를 생각했는데, 2층침대가 있는 집에 놀러갔다가 남자 아이들이 원숭이처럼 위, 아래로 날아오르고 뛰어내리는 모습을 본 후 마음을 접었어요. 그래서 침대를 방방 정도로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안방에서 쓰던 침대를 물려주었어요. 매트리스가 망가질 때까지 쓰게 할 생각으로 침대 다리를 잘라 높이를 낮추고, 자다가 떨어지지 않게 침대 가드를 달아주었어요.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가드를 떼어버렸어요. 용도를 다 한 가드는 공방에서 부엌선반으로 리폼해주셔서 지금은 주방에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둘이 쓰는 책상, 둘이 쓰는 옷장, 둘이 쓰는 옷걸이 등 필요한 가구들을 제작했어요. 성인이 되어도 쓸 수 있는 심플한 디자인이 기본이었습니다.

 

5년동안 사용한 책상이 많이 더러워져서 상판을 사포로 밀어 다시 깨끗하게 만들어주셨어요. 오일 마감을 하고 건조시키는 모습이에요. 원목가구는 낡게 두어도 멋지고, 표면을 얇게 갈아내면 다시 새것처럼 만들 수도 있어요.

 

보드게임이나 미술도구 등을 수납할 자리가 없어 벽장을 달았어요. 벽장의 윗면은 아이들이 만들어온 작품을 수납하고 있어요.

 

가구를 배열한 후 비어있는 애매한 벽에는 전면 옷걸이장을 두었어요. 행거를 놓기에는 공간이 좁아 폭이 얇은 옷걸이장을 맞춤제작하였는데 버려지는 공간을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만족해요. 입던 외투를 걸어 놓기 좋고, 밑에는 그때 그때 갈아입는 내복과 잠옷 등을 수납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었어요.

 

 

가리는 수납법, 안방

 

안방은 수납과 숙면에 중점을 두었어요. 옷방이 따로 없어서 키 큰 장에 부부의 모든 옷과 이불을 넣다보니 늘 수납공간이 좁다고 느껴져요. 작은 방에 옷장을 하나 더 설치해볼까 오래 고민했는데, 결국 옷을 버리는 쪽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미니멀리즘 수납법에 관한 책들을 보며 옷정리를 해보니 꽤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하지만 가차없이 버리는 성격이 못 되어서 빈 공간이 금새 차버리곤 해요. 안방은 면적당 수납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라 물건을 가리는 수납을 하고 있어요.

 

침대 옆 화장대 위에도 자잘한 화장품을 올리지 않으려고 서랍 안으로 모두 넣었어요. 밖으로 봐서는 물건이 없어보여 쾌적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목표예요.

 

쉬거나 책을 읽는 정도의 활동만 하기 때문에 특별한 꾸밈없이 단출하게 유지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최근에 완성하게 된 서재

 

서재에는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 방을 분리해야 할 때 내어줄 계획으로 특별한 가구를 놓지 않았어요. 최근에는 남편의 책상을 맞춤제작했어요. 아이가 이 방을 쓰게 되면 어딘가로 이동하게 될 가구라 더 신경써서 제작했어요. 아직 정해진 위치는 없지만 방의 중간에 놓을 수도 있으니 앞, 뒷면 모두 보기 좋게 디자인한 가구예요.

 

 

서두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천천히 집꾸미기

 

집을 꾸미는 일은 늘 진행형이라고 생각해요. 집에 관심을 갖게 되면 안목은 점점 높아지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면 예전에 구입했던 것들이 허술해보이고 자꾸만 새것으로 바꾸고 싶어지죠.

 

그래서 저는 정말 좋은 것을 살 수 있을때까지 예산을 모으면서 기다리는 쪽을 택했어요. 예산이 부족하면, 좋은 것을 마련할 수 있는 시기까지 몇 년이 되든 그 공간을 비워 놓았어요. 집꾸미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공간을 채우려는 조바심을 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에요.

 

 

꿈꾸는 단독주택 라이프

 

아이들이 분가하는 날이 오면 주택에 살고 싶은 꿈이 있어요. 나이가 들면 병원 다닐 일이 많으니 전원생활은 힘들 것 같고 도시안의 오래된 주택을 조금 손봐서 살고 싶어요. 낮은 침대가 있는 안방 하나, 차실 하나, 그림을 그릴 작업방 하나. 거실은 남편과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편안한 라운지로 꾸미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장욱진 작가님은 평생 작은 작업실에서 작은 그림을 그리셨다고 해요. 저도 작업실을 겸한 집에서 최소한의 가구와 그림 도구로 단출하게 작업하며 살아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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