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7, 13층 1305호(한강로3가, 용산센트럴파크타워)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길경환
이태원에 있는 이 집의 첫인상은 그저 오래된 주택일지도 모른다. 이미 여러 사람이 여닫아 닳아버린 창틀, 할머니 집에서 봤던 진한 색의 화장실 세면대, 대문을 열 때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
목수인 진우 씨는 오래되어 쓸 수 없는 것을 직접 고치고, 작은 물건을 하나씩 만들어가며 이 공간을 채워나간다. 서울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낡은 자리를 그는 자신의 ‘집’으로 만들고 있다.
가구 만드는 일을 하고 계신다고요.
'스탠다드 에이'라는 가구 제작 회사에서 작년 8월부터 일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미숙해서 주로 샌딩(sanding, 흠집을 제거하고 도장할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일) 작업을 하고 있고 가끔 벤치나 테이블 등의 단순한 구조의 가구들을 만들고 있어요.
이전에 잡지 에디터로 일하셨다고 들었는데,
목수로 직업을 바꾸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무얼 하며 지내면 오래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에디터를 하게 된 이유도, 그걸 그만두고 목공 일을 하겠다고 결정한 이유도 그런 질문의 대답이었어요.
저는 항해할 수 있는 큰 배를 만들어 보는 게 꿈인데요. 그런 일에 다가가기에 에디터 일보다는 가구를 만드는 일이 조금 더 낫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실제로 해보니 상상했던 것과 다른 점은 없던가요?
목공 일을 시작하기 전에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1년 정도는 주말마다 교육 공방에 다니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런지 상상과의 괴리는 적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에디터 일을 할 때 알던 분을 가구 제작 회사 출근 첫날에 우연히 만났거든요. 저희 가구가 들어가는 곳 인테리어를 담당하고 계시더라고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렇게 물었을 때 제 옆에 있던 회사 선임이 저 대신 이렇게 대답해 주셨어요. “어, 우리 회사 알바~!” 새로운 직업은 그렇게 조금 굴욕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집을 둘러보니 가구가 몇 없지만,
있는 가구들이 기성 가구와는 다른 느낌이에요.
특히 창가에 있는 테이블과 긴 의자가 눈에 띄어요.
긴 의자는 취직 전에 주말 공방에 다닐 때 만들었고요.
창가 선반은 회사 정직원이 된 후에 만든 거예요. 친구가 나왕 원목을 좀 실어다 주거든요. 그럴 때마다 틈틈이 필요한 걸 만들어서 씁니다.
창가 테이블 앞에 앉으면 바깥 골목이 바로 보이는 것 같네요.
창 쪽에 있는 거리가 이슬람 사원을 향하고 있어요. 그래서 무슬림이 자주 보이고, 긴 오르막 때문에 오토바이 소리도 자주 들려요. 가게 간판들도 읽을 수 없는 이슬람 글씨가 많고요. 가끔 일요일 낮에 집을 나서면 어딘가 먼 곳으로 여행 온 기분이 듭니다. 거기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그렇게 잠시 동안 낯선 기분을 느끼는 걸 반갑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과 눈인사하면 행복해요.
거실 가운데 있는 동그란 테이블은
스탠다드에이 쇼룸을 지나다 비슷한 것을 봤어요. 직접 쓰려고 만드셨나요?
남자 혼자 쓰기엔 좀 큰 식탁 같아요.
직접 쓰려고 만들었습니다(웃음).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정규 제품이고요 입사 후 완성해 본 첫 번째 가구예요. 원형 테이블을 만들려면 여러 기계를 쓸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연습을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어 봤어요. 평소에 갖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고요.
한쪽에 식물을 놓는 공간에
식물을 얹어두는 나무 프레임이 보이네요.
가구가 별로 없어서 필요한 것만 두고 사시는 거라고 넘겨 짚었는데, 저걸 보니 그런 것 같진 않네요.
꼭 필요하지 않은 것도 한번 만들어 보길 좋아합니다. 핀터레스트나 인스타그램에서 가구 사진을 보면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예상되는 물건이 있거든요. 그럼 한번 만들어 봅니다.
가구 제작 회사에 취직해서 가장 좋은 점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한 걸 바로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집에 들어왔을 때, 거실 조명이 빨간색이었는데
노란 전구로 갈아 끼우시더라고요.
거실의 창이 남향이 아니라서 채광이 좋지 않아요. 거실의 식물들이 죽을까 봐 출근할 때 식물 재배용 전구를 켜둡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전구를 바꾸는 일이에요. 겨울 동안에는요.
식물을 아끼는 마음을 갖고 계신 것 같은데,
또 나무를 베어 뭔가를 만드는 일 사이에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면 복잡한 마음이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최대한 그런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생각이기도 하죠. 저는 정답을 모르고, 다만 순간순간 덜 괴로운 쪽으로 행동합니다.
화장실이나 부엌 공간에도
직접 만들었을 것 같은 나무 선반들이 보여요.
창가의 긴 선반과 함께 만든 건데요, 보통은 먼지나 물기 때문에 이렇게 설치하길 꺼리죠. 그들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자취방에 일괄적으로 들어가 있는 벽걸이 수납장이 참 싫더라고요. 주방에 서 있는 걸 좋아하니까 제가 좋아하는 대로 꾸미고 싶었어요.
욕조 위 선반에 담배나 책 같은 물건들도 보여요.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해요.
욕조는 월세 집을 구하며 기대하지 않았던 공간인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물을 받아 놓고 들어가 있어요. 그 안에 있으면 책도 좀 읽고 싶고 술이나 담배도 좀 하고 싶어요.
습기가 너무 차지 않게 욕실 문은 열어 놓거든요. 바깥에 스피커를 두고 조용한 노래를 크게 틀어 놔요. 한 달에 두세 번.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테이블 같은 것은 직접 만들기에 무리가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선반은 방법만 알면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소량의 목재를 원하는 사이즈로 재단해서 판매하더라고요. 여러 디자인의 선반 거치대를 판매하는 곳도 있고요. 그렇게 어려운 방법은 아닐 겁니다. 그보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 있어요. 요즘 동네를 걷다 보면 버려진 가구들이 많잖아요. 그중에 원목 서랍장이 있으면 서랍을 하나 빼서 집에 가져오세요. 그걸 벽에 걸면 꽤 멋진 선반이 됩니다.
그 외에 집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 중에 목수가 아니어도 만들어볼 수 있는 물건이 있을까요?
제가 얼마 전에 숟가락 만들기 원 데이 클래스를 들었거든요. 몇 가지 조각도만 있으면 집에서도 만들 수 있더라고요. 꽤 오래 걸리지만 하나하나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요. 숟가락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포털사이트나 SNS에 ‘나무 숟가락 만들기’, ‘Wood Carving’ 등으로 검색해 보세요.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티 코스터, 도마도 마찬가지고요.
나무 상판을 적당히 잘라 부엌 가구에 붙여주고 손잡이만 바꿔줘도 조금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이케아에서 파는 철제 프레임에 위의 상판만 원목을 주문해서 갈아 끼워보세요. 친구들이 놀러 오면 어디서 샀냐고 묻는데 이케아라고 하면 갸우뚱거리더라고요. 상판만 바꿨을 뿐인데요.
침실엔 침대 빼곤 아무것도 없네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미처 꾸미질 못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이사하고 집 꾸미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침실이 단출하니 의외로 좋습니다. 좋아하는 고래 사진 한 장 붙여 놓았어요. 만족합니다.
곳곳의 작은 물건들, 사진, 그림 같은 것들도 사연이 궁금해져요. 일본어나 영어가 많아 여행지에서 갖고 왔거나 선물 받았을 것 같은 물건들인데요.
맞아요. 집 곳곳에 추억이 있어요. 하나하나 설명하면 듣다가 지칠 거예요.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보이면 가장 좋은 인테리어라고 어떤 영화에서 말했는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전에 글을 쓰는 일을 하셨는데도 책은 몇 권 없네요.
에디터들 집에 가면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풍경을 종종 봤거든요.
몇 권 없는 책도 다 읽지 못한 게 많아요. 부모님이 사는 집에 제 책이 많은데 가끔 거기서 몇 권 뽑아오곤 해요. 가지고 있는 책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은 없어요. 다만 갑자기 무언가 읽고 싶을 때 좋은 책이 곁에 한두 권 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한 목수가 이케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했던 게 기억납니다. 적잖은 이케아 제품들이 보이는데, 가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케아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 이사할 때 이케아에 한 번 갔었거든요. 우선 필요로 하는 간결한 물건이 많아서 좋았고,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해서 좋았어요.
저는 한 달에 월급이 200만 원이 안 되는 직장인인데 저한테도 꽤 선택권이 있더라고요. 고마운 마음이 조금 들었어요. 저와 비슷한 다른 이들에게도 필요할 테니까. 완성도나 퀄리티에 관해서는 노코멘트입니다. 꼭 필요한 브랜드라는 생각만 밝히고 싶어요.
집에서 더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봄이 되면 베란다 쪽에 채소들을 조금 기를 거예요. 동네 식료품점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로요. 추위 때문에 방에 들어와 있는 화분들도 그쪽으로 옮겨 줘야죠. 그러기 전에 그 공간을 아주 깨끗이 청소하고 싶어요.
혹시 앞으로 살아보고 싶은 집의 모양이나
만들고 싶은 가구도 있을지 궁금합니다.
마당이 넓고 빛이 잘 드는 집을 구해서 직접 울타리 작업을 하고 싶어요. 넝쿨이라든지 나무들을 잘 심어서요. 철근도 좀 써야 할 것 같은데. 그 안에서 여자친구네 있는 고양이들, 부모님 집에서 지내고 있는 강아지를 뛰어놀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만들고 싶은 가구는 그때가 돼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이든 만들 수 있게 기술을 배워 둘 겁니다.
마지막으로 진우 씨에게 ‘집’이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받으니 정말 의외로 집 없는 이들이 떠올라요. 갑자기. 집은 모두에게 필요한 공간인데. 좀 더 쉽게 집을 빌리거나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집꾸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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