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7, 13층 1305호(한강로3가, 용산센트럴파크타워)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길경환
“Walking, Playing, Seeing”
바람 많은 제주에 조성된 정원은 봄부터 가을까지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도시 생활의 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나무와 꽃에 안겨 휴식을 보내는 곳. 한동리 주택의 정원은 가족에게 일생의 가장 좋은 한 때를 선물하고 있다.
실용과 미학, 건축과 조경의 공존
아침이면 흐드러지게 핀 라벤더 사이로 마당을 거닌다. 꽃 몇 가지를 꺾어 테이블을 장식하고, 직접 딴 허브를 더해 샐러드를 만든다. 세 식구의 테라스 브런치 시간이 끝나면 마당은 본격적인 아이의 놀이터다.
재잘거리는 딸 아이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정원. 이곳은 제주 한동리에 자리 잡은 한 가족의 노스탤지어다.
작업은 이 협업이 가능한 설계사무소 ALIVEUS(얼라이브어스)가 맡았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건축과 조경을 함께 디자인하는 곳이다.
건축가와 조경 디자이너는 건물과 마당의 유기적인 관계를 고려해 외부공간을 계획하고, 건물을 배치할 때도 한참을 조율하는 시간을 가졌다. 집 어디에서도 나무를 가까이할 수 있도록 건물과 창의 위치를 정하고 실내에는 중정을 두었다.
검은 흙의 밭일 때 이 땅을 보고, 부부는 무질서한 나무에 마음을 뺏겼다. 마을 안쪽 깊숙이 자리해 계절 채소를 길어내던 밭은 못생긴 삼각형 모양에 오래된 수목이 여기저기 자리했다. 집짓기에 제격인 땅은 아니었지만, 일부러 연출할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부부는 기존 환경에 최대한 채가 가지 않는 집을 짓고 싶었고, 더불어 하나의 숲과 같은 정원을 꿈꿨다. 애초부터 건축과 조경을 함께 설계해야하는 이유였다.
현무암 판석은 바닥에 리듬감을 만들고, 부드러운 초화류와 대비를 이룬다.
초화류를 이용한 혼합식재기법
얼라이브어스 김태경 디자이너는 “외부 도로에서 집의 메인 출입로로 들어오며 마주하는 공간이 특히 중요했다. 다양한 초화류가 한 눈에 담기고, 보는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레 나무로 이어지게 했다"고 의도를 밝힌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조경 실무를 해 온 그는 “한 수종을 적어도 11주 이상 (포인트 식재제외)심는 방식을 따르는데, 그 중 고사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식재의 색과 질감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정원은 초화류를 이용한 혼합식재기법이 메인이다. 라벤더를 목재 데크 양 옆에 식재해 정원 전체의 컬러와 텍스처를 잡고,
이를 기점으로 색상의 대비 (삼색조팝의 노락색, 백묘국과 램이어의 은색), 텍스처의 대비 (램즈이어의 야생성, 유카의 포인트, 털수염풀의 부드러움, 주목의 거침), 볼륨의 대비 (로즈마리와 주목의 볼륨감, 리아트리스의 솟아오름)를 노렸다. 이러한 대비는 모든 수종들이 인위적인 느낌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해, 정원을 훨씬 풍성하게 연출한다.
보라색 라벤더, 노란색 삼색조팝, 흰색의 수국에 아가판서스 꽃까지, 온갖 색상의 꽃과 다양한 텍스처의 잎이 어우러져 시각적 즐거움은 물론 강렬한 향기도 대단하다. 꽃이 한창일 때는 길을 지나는 이웃이나 제주 여행객들이 집 앞에 멈춰서 돌담 안쪽 사진을 찍곤 하는 진풍경을 겪기도 했다.
Gardener’s Tip l 정원은 시간이 가꾼다
초기에는 물주기와 잡초 제거에 신경써야 한다
많은 관리가 필요없는 식재라도, 초기 정착 시점에는 주기적으로 물을 주고 잡초를 제거해주는 것이 좋다. 이후에는 바크나 쇄석같은 멀칭을 통해 잡초를 예방할 수 있다.
초화류는 간격을 넓게 심어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처음에는 다소 허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초화류는 간격을 조금 넓게 심는 게 좋다. 다소 힘없이 보이는 식물의 뿌리가 토양에 자리 잡고 안정되어 뻗어 나가면서 풍성한 정원이 된다. 너무 빽빽하게 심어놓으면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디자인 의도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처음 심을 때 줄기와 잎의 방향을 잘 잡아서 하나하나 방향을 앉혀가는게 좋다.
시간이 가꾸는 변화무쌍한 정원
배롱나무와 돌단풍, 잔디 등을 심은 중정 덕분에 정원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교목은 마당 동선의 축을 중심으로 좌우에 산수유 6그루를 심어 사계절 다른 모습을 감상하게 했다. 마당의 중간 기점에는 두 줄기로 뻗은 정원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설계를 구현하는데 생각하지 못한 난관이 있었다. 바로 제주라는 지역 특수성이었다. 오랫동안 토착화된 수종과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수종이 명확한 제주에는, 다양한 식물을 구하기 힘들었다.
결국 비용 상승을 감안하고 교목과 초화류 대부분을 육지에서 들여오기로 결정하고, 수급 일정에 맞춰 공사를 진행했다. 시공은 건축주와 사무소와 직원들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는데, 무더위에 싸우며 흙을 만지는 시간은 고되었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다소 색은 빠졌지만, 가을의 메마른 느낌마저 멋스러운 정원은 차츰 겨울나기를 준비 중이다. 정원이 계절에 따라 변해가도 가족은 여전히 파자마 차림으로 아침 정원을 산책한다. 다가올 겨울에는 소파에 누워 중정에 내리는 눈을 감상하게 되길. 자연이 스며드는 풍경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새로운 방식의 정원에 마음을 열어라
우리나라는 잔디 위에 디딤석, 주변에는 소나무와 철쭉을 심는 획일화된 조경이 많다. 관상보다 실용적인 정원을 원한다면 허브와 초화류를 식재하는 등, 자신을 원하는 생활에 초점을 맞춰 설계한다. 여러 사례를 살펴보고 자신에 맞는 새로운 방식의 정원을 과감히 적용해 보자.
넓은 데크와 잔디가 기능적으로 미학적으로 비례가 좋다.
안마당은 침실에서 바로 내다보이는 프라이빗한 잔디정원이다.
어두운 밤이 되면 은은한 불빛으로 또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축주 인터뷰 ㅣ “온몸과 집 안을 휘감는 허브 향기 즐겨요.”
Q. 정원에서 가족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잔디마당과 집 사이에 깊이 2.5m의 처마가 있다. 일반적인 테라스보다 깊게 설계되었다. 가족만의 개인적인 공간으로 파자마 차림으로 선베드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식탁을 옮겨 브런치를 즐기기도 한다.
처마 덕분에 비가 오는 날씨도 즐길 수 있어서 활용도가 높다. 그야말로 마당 있는 집의 장점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Q. 가장 애착이 가는 식물은
마당에 있는 허브 종류는 모두 만족스럽다. 제주는 워낙 바람이 많은 곳이라, 여러 허브가 어우러져 나는 향기가 그만이다. 물론, 실용적이기도 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라벤더를 몇 잎 따서 베개 옆에 두고, 생선 요리를 할 때도 로즈마리로 향을 더한다. 마당의 식물이 내 생활의 일부가 될 때 만족도가 배가 되는 것 같다.
Q. 정원을 가꾸는 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제주도는 봄철부터 잡초의 생육이 놀랄 만큼 활발하다. 며칠 만에 들르면 잡초들이 쑥 자라 있다. 땅이 젖었을 때 어린 풀들은 손으로도 잘 뽑히지만, 종류에 따라서는 호미를 들이대야만 뿌리가 뽑히기도 한다.
아직 가드닝 초보라 예방은 못 하고 수습하기만 한다. 그래서 호미와 몸빼 바지가 필수이기도 하다.
Q. 집과 정원에 대한 소감은
도시 생활에 지친 우리 가족의 요새이자, 아지트다. 마당에 식탁을 내놓고 밥을 먹을 때마다 ‘이 시간이 우리 인생에 참 좋은 날로 기억될 것'이라 생각한다. 집과 정원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함께 설계하고 가꿔가야만, 일상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진짜 멋진 집이 될 것이다.
사진 : 김형석(STUDIO JEJU)
집꾸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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